분명 커피 한 잔만 마시고 가려 했는데, 어느새 한참 앉아 있었던 공간이 있나요? 사진으로 봤을 때의 멋보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더 선명하게 남는 곳이요. 어디에 앉을지 금방 알겠고, 옆 사람과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도 같은 풍경을 나누게 되는 공간. 그 편안함은 어디서 시작될까요?
런던의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해마다 다른 건축가와 예술가의 생각을 공원 안으로 불러옵니다. 멀리서 형태를 감상하는 재미도 있지만, 더 흥미로운 순간은 그 안에 들어간 다음이에요. 지붕이 만든 그늘, 벽 사이로 들어오는 빛, 잠시 앉아 바라보는 사람들. 건축을 눈으로만 보던 사람이 어느새 공간의 사용자가 됩니다.
테아스터 게이츠의 2022년 파빌리온 ‘Black Chapel’도 명상과 모임, 음악 프로그램을 위한 장소로 기획됐어요. 조용히 머무는 시간과 함께 모이는 시간이 같은 공간에 담기는 셈이죠.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얼마나 특별한 모양인가’와 함께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태도입니다.
흰 구조물 사이에서 잠시 쉬어 가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Cots Archive / 원본 파일 크레딧: Iwan Baan.
OAO 실내 정면. 중앙 아치와 양옆의 계단형 좌석. 이미지: CSUCSA Studio.
양양에서, 바다 대신 사람을 풍경으로
이 이야기는 수사스튜디오가 작업한 양양의 OAO로 이어집니다. 양양이라고 하면 으레 바다부터 떠올리지만, 처음 만난 현장에는 산과 고속도로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이곳을 채울 풍경은 무엇일까. 우리는 사람들이 오가고, 마주 보고, 같은 집기를 나누어 쓰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OAO 내부. 바닥 그래픽과 낮은 집기가 움직임을 안내합니다. 이미지: CSUCSA Studio.
양쪽의 계단형 공간은 서로의 시선과 소리가 교차하도록 계획했어요. 바닥 그래픽은 앉는 자리와 걸어가는 길을 구분하고, 낮은 테이블과 식물은 이동을 부드럽게 안내합니다. 입구의 공유 테이블은 하부 레일을 따라 결합하거나 나눌 수 있도록 설계했죠. 일행의 규모나 쓰임에 따라 자리를 바꿀 여지를 남긴 거예요.
파빌리온의 인상을 가져온 OAO 외관. 이미지: CSUCSA Studio.
천막으로 감싼 외관에서도 파빌리온의 인상을 가져왔지만, 더 오래 붙들었던 생각은 따로 있었습니다. 낯선 사람들도 한 공간을 자연스럽게 나누어 쓰게 하자. OAO에서 가져온 파빌리온의 힌트는 그 작은 가능성이었어요.
도시의 일상과 맞닿은 작은 파빌리온. 이미지 출처: Cots Archive.
다음 공간에서는, 앉을 자리부터 찾아보세요
좋은 공간을 알아보는 데 꼭 어려운 건축 용어가 필요한 건 아닐 거예요. 다음에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난다면, 사진을 찍기 전에 잠깐 앉아보세요. 입구에서 자리까지 망설이지 않고 걸어왔는지, 앉은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함께 온 사람과 대화하기는 편한지.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것들이 꽤 많습니다.
파빌리온을 보며 우리가 얻은 답도 여기에 가까워요. 머물고 싶은 공간에는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그늘일 수도, 테이블의 간격일 수도, 바닥의 짧은 선 하나일 수도 있죠. 공간을 나선 뒤에도 기억나는 것은, 어쩌면 그곳에서 편하게 보낸 몇 분일 테니까요.
이런 시선을 모아볼 수 있었던 전시도 있어요. 아래 두 사진은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열린 2024년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순간들 2000~2024》 전시 기록입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 안내는 아니지만, 여러 파빌리온을 한자리에서 돌아본 장면을 함께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