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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들렀는데, 오래 남는 공간 — 파빌리온과 OAO

나무 그늘 아래 밝은 지붕과 기둥으로 열린 공간을 만든 Counterspace의 2021 서펜타인 파빌리온
Counterspace의 2021 서펜타인 파빌리온. 이미지 출처: Cots Archive / 원문 크레딧 ©Serpentine Gallery.

왜 어떤 공간에서는 조금 더 머물게 될까요?

분명 커피 한 잔만 마시고 가려 했는데, 어느새 한참 앉아 있었던 공간이 있나요? 사진으로 봤을 때의 멋보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더 선명하게 남는 곳이요. 어디에 앉을지 금방 알겠고, 옆 사람과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도 같은 풍경을 나누게 되는 공간. 그 편안함은 어디서 시작될까요?

공원 잔디 위 프리다 에스코베도의 파빌리온과 주변을 오가는 방문객
공원의 산책길과 맞닿은 파빌리온. 이미지 출처: Cots Archive / 원문 크레딧 ©Serpentine Gallery.

코츠 아카이브의 파빌리온 이야기를 다시 펼쳐봤습니다. 전시나 행사를 위해 한동안 세워졌다가 철거되거나 다른 자리로 옮겨지는 파빌리온은, 사람이 잠깐 머무는 방식을 실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곡선이 있는 흰 지붕과 경사 진입로로 이어지는 파빌리온
경사로와 지붕이 만드는 진입의 경험. 이미지 출처: Cots Archive / 원문 크레딧 ©Serpentine Gallery.
비정형 흰 패널과 유리로 둘러싸인 파빌리온 주변 잔디에 머무는 사람들
파빌리온 주변 잔디에 머무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Cots Archive / 원문 크레딧 ©Serpentine Gallery.
원통형 검은 외벽과 높은 출입구를 갖춘 Black Chapel의 외관 렌더링
Theaster Gates, Black Chapel, 2022. 외관 렌더링 ©2022 Theaster Gates Studio. 이미지 출처: Cots Archive.

건물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

런던의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해마다 다른 건축가와 예술가의 생각을 공원 안으로 불러옵니다. 멀리서 형태를 감상하는 재미도 있지만, 더 흥미로운 순간은 그 안에 들어간 다음이에요. 지붕이 만든 그늘, 벽 사이로 들어오는 빛, 잠시 앉아 바라보는 사람들. 건축을 눈으로만 보던 사람이 어느새 공간의 사용자가 됩니다.

푸른 벽체 위로 넓은 목재 지붕이 펼쳐진 파빌리온
그늘 아래 열린 공간을 만드는 넓은 지붕. 이미지 출처: Cots Archive / 원문 크레딧 ©Serpentine Gallery.
주름진 지붕과 문양이 있는 목재 벽체로 구성된 파빌리온
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문양의 벽. 이미지 출처: Cots Archive / 원문 크레딧 ©Serpentine Gallery.

테아스터 게이츠의 2022년 파빌리온 ‘Black Chapel’도 명상과 모임, 음악 프로그램을 위한 장소로 기획됐어요. 조용히 머무는 시간과 함께 모이는 시간이 같은 공간에 담기는 셈이죠.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얼마나 특별한 모양인가’와 함께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태도입니다.

곡선으로 휘어진 흰 기둥 사이에 앉거나 서 있는 방문객
흰 구조물 사이에서 잠시 쉬어 가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Cots Archive / 원본 파일 크레딧: Iwan Baan.
OAO 실내 정면에서 바라본 중앙 아치와 좌우 대칭의 계단형 좌석
OAO 실내 정면. 중앙 아치와 양옆의 계단형 좌석. 이미지: CSUCSA Studio.

양양에서, 바다 대신 사람을 풍경으로

이 이야기는 수사스튜디오가 작업한 양양의 OAO로 이어집니다. 양양이라고 하면 으레 바다부터 떠올리지만, 처음 만난 현장에는 산과 고속도로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이곳을 채울 풍경은 무엇일까. 우리는 사람들이 오가고, 마주 보고, 같은 집기를 나누어 쓰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OAO 내부의 둥근 카운터와 식물, 공간 구역을 안내하는 바닥 그래픽
OAO 내부. 바닥 그래픽과 낮은 집기가 움직임을 안내합니다. 이미지: CSUCSA Studio.

양쪽의 계단형 공간은 서로의 시선과 소리가 교차하도록 계획했어요. 바닥 그래픽은 앉는 자리와 걸어가는 길을 구분하고, 낮은 테이블과 식물은 이동을 부드럽게 안내합니다. 입구의 공유 테이블은 하부 레일을 따라 결합하거나 나눌 수 있도록 설계했죠. 일행의 규모나 쓰임에 따라 자리를 바꿀 여지를 남긴 거예요.

흰 천막으로 전면을 감싼 양양 OAO의 외관과 운동장
파빌리온의 인상을 가져온 OAO 외관. 이미지: CSUCSA Studio.

천막으로 감싼 외관에서도 파빌리온의 인상을 가져왔지만, 더 오래 붙들었던 생각은 따로 있었습니다. 낯선 사람들도 한 공간을 자연스럽게 나누어 쓰게 하자. OAO에서 가져온 파빌리온의 힌트는 그 작은 가능성이었어요.

광장 조각상 옆 붉은 프레임과 흰 지붕으로 세운 소규모 파빌리온
도시의 일상과 맞닿은 작은 파빌리온. 이미지 출처: Cots Archive.

다음 공간에서는, 앉을 자리부터 찾아보세요

좋은 공간을 알아보는 데 꼭 어려운 건축 용어가 필요한 건 아닐 거예요. 다음에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난다면, 사진을 찍기 전에 잠깐 앉아보세요. 입구에서 자리까지 망설이지 않고 걸어왔는지, 앉은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함께 온 사람과 대화하기는 편한지.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것들이 꽤 많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빌리온과 공원 산책길의 방문객
파빌리온과 공원의 일상. 코츠 아카이브 원문 대표 이미지 / 원문 크레딧 ©Serpentine Gallery.

파빌리온을 보며 우리가 얻은 답도 여기에 가까워요. 머물고 싶은 공간에는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그늘일 수도, 테이블의 간격일 수도, 바닥의 짧은 선 하나일 수도 있죠. 공간을 나선 뒤에도 기억나는 것은, 어쩌면 그곳에서 편하게 보낸 몇 분일 테니까요.

이런 시선을 모아볼 수 있었던 전시도 있어요. 아래 두 사진은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열린 2024년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순간들 2000~2024》 전시 기록입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 안내는 아니지만, 여러 파빌리온을 한자리에서 돌아본 장면을 함께 남깁니다.

2024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순간들 전시 포스터 세 장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순간들 2000~2024》 포스터. 2024년 전시 기록. ©서울도시건축전시관 / Cots Archive.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2024 서펜타인 파빌리온 사진 전시와 목재 좌석
사진과 모형으로 공공 공간을 돌아본 2024년 서울 전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 Cots Archive.

이야기 더 보기

코츠 아카이브 · 움직이고 사라지는 공공 시설물 파빌리온
수사스튜디오 · OAO, The Ground of the Stadium

Serpentine · Black Chapel (2022)
서울도시건축전시관 ·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순간들 (2024)

파빌리온 이미지: Cots Archive 원문 수록 자료. 개별 출처는 이미지 캡션에 표기했습니다. OAO 이미지: CSUCSA Studio 프로젝트 아카이브.